
유명 국악 연주자가 미성년 제자를 4년여에 걸쳐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고소장이 서울경찰청에 접수됐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고소장은 178쪽 분량이고, 첫 추행 당시 고소인은 만 16세 미만이었다. 개인 레슨실과 차 안에서 입맞춤으로 시작된 접촉이 유사성행위와 간음으로 이어졌고, 연주자는 "무덤까지 가져가자"며 비밀을 요구했다는 것이 고소인 측 주장이다.
연주자 측은 어떠한 성적 접촉도 없었고 레슨 지도를 위한 사제 관계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수사는 이제 시작이고 사실관계는 수사와 재판에서 가려질 일이다. 다만 이 사건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 보이는 관계에서 성범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몇 년이 지나 고소해도 처벌이 가능한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법적 구조를 정리해 둔다.
1. 고소장에 적힌 혐의
고소장에 적힌 혐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 등에 의한 간음·유사성행위·추행과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이다.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을 폭행·협박에 의한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과 같은 예로 처벌한다. 간음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은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자기의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을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레슨을 하는 스승과 제자는 이 '그 밖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
2. 폭행이 없어도 성범죄가 되는 이유
가. 위력은 물리력만이 아니다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입시를 앞둔 학생에게 스승의 평가와 추천, 업계에서의 영향력은 거부를 어렵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법원은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나이 차이,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함께 본다. 고소인이 남긴 "싫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는 메모가 수사에서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 대법원이 넓힌 위계의 의미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위계의 범위를 넓혔다. 속임수가 성행위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에 관한 것이어도 위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아동·청소년이 외관상 성적 결정이나 동의로 보이는 언동을 했더라도 타인의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의 이용에 의한 것이라면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보기 어렵고, 인과관계는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루밍이라 불리는 길들이기 수법은 바로 이 '왜곡된 신뢰관계'에 해당한다. 겉으로 동의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가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판결의 핵심이다.
다.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조문
형법 제305조 제2항은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19세 이상의 사람을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강제추행의 예로 처벌한다. 다만 이 조항은 2020년 5월에 생겼으므로 그 전의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행위가 여러 해에 걸친 사건은 각 행위의 시점과 당시 피해자 나이에 따라 적용 법조가 달라진다.
3. 몇 년 뒤의 고소, 늦지 않았다
가. 공소시효는 성년이 된 날부터
청소년성보호법 제20조 제1항은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의 공소시효가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한다고 정한다. 마지막 행위로부터 3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처벌이 막히지 않는다. 피해를 털어놓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성범죄의 특성을 법이 반영한 것이다.
나. 손해배상 청구 기간
민법 제766조 제3항에 따라 미성년자가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성년이 될 때까지 진행하지 않는다. 형사 절차와 별도로 위자료와 치료비를 청구할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4. 양쪽이 지금 할 일
가. 피해를 말하려는 사람이라면
당시의 일기, 휴대전화 메모, 메시지, 레슨 일정과 이동 기록은 그 자체로 중요한 증거다. 지우거나 고치지 말고 원본 그대로 보관해야 한다. 성범죄 피해자는 수사 단계부터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고, 국선변호사 선정과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도 마련돼 있다. 진술은 한 번에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기억이 흐린 부분은 흐리다고 말하는 편이 신빙성을 지킨다.
나. 고소를 당한 사람이라면
혐의를 부인한다면 레슨 일지, 일정, 연락 내역처럼 객관적인 자료로 반박해야 한다. 고소인에게 직접 연락해 해명하거나 고소 취하를 부탁하는 행동은 증거인멸이나 2차 가해로 비칠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다. 위계·위력 간음은 법정형이 무거워 수사 초기의 진술이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첫 조사 전에 변호인과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
5. 맺으며
사제 관계는 신뢰 위에 서 있고, 그 신뢰가 클수록 거부는 어려워진다. 법이 폭행과 협박이 없는 성범죄를 따로 처벌하고, 공소시효의 시작을 늦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고소인의 주장과 피고소인의 반박은 모두 증거로 검증되어야 한다. 예술계와 교육 현장의 닫힌 사제 관계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7.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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