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 씨가 여신도들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3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보도에 따르면 공소사실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수련원 등에서 여신도 16명을 상대로 범행했다는 것이고, 자신을 '메시아'로 믿게 해 피해자들을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빠뜨린 뒤 범행했다는 내용이다. 1심 법원은 검사의 구형보다 6년 무거운 형을 선고하면서 종교적 위계질서와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를 이용한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정 씨 측은 1심 내내 피해자 진술을 믿기 어렵고, 피해자들이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다퉜다. 항소심에서도 같은 쟁점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는데도 강간과 같은 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종교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 학교, 가족처럼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관계 어디에서나 생긴다.
1. 폭행 없이도 강간과 같이 처벌되는 준강간죄
가. 법이 말하는 '항거불능'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도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이것이 준강간, 준강제추행이다. 가해자가 폭행을 쓰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 상태를 이용했다면 강간과 같이 본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 잠든 사람이 대표적인 예이지만, 항거불능은 신체 상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를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라고 풀이해 왔다. '심리적'이라는 말이 바로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나. 대법원이 그어 온 선
이 기준이 처음부터 넓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2000년 대법원은 병을 낫게 해 주겠다는 목사의 요구에 응한 신도들 사건에서 준강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 2000. 5. 26. 선고 98도3257 판결항거불능 상태란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말하는데,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성인 피해자들이 행위를 인식하고 대화를 주고받은 사정 등에 비추어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
그 뒤 대법원은 장기간의 지배 관계가 피해자의 마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에 더 주목하게 됐다. 2025년 친족 사이의 사건에서는 이렇게 판단했다.
대법원 2025. 5. 1. 선고 2021도11938 판결정신적·경제적 지배·예속관계 등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상당한 기간 계속한 폭력, 성적 학대, 감시와 통제의 점진적·누적적 영향으로 피해자가 대항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자포자기 상태에 있었다면 심리적 항거불능이 인정될 수 있다.
두 판결은 같은 정의를 쓰지만 보는 지점이 다르다. 앞의 판결은 범행 순간 피해자의 겉모습을 봤고, 뒤의 판결은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쌓인 관계 전체를 보라고 한다. 피해자의 처지와 관점, 관계의 기간, 반응의 변화를 종합하라는 것이다.
2. 종교적 지배 사건에서 다투어지는 것
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이런 사건에서 피고인 측은 대개 "피해자가 스스로 따랐다", "그 뒤에도 단체에 남아 있었다"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지배 관계 속의 피해자는 피해 직후 곧바로 벗어나거나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이 피해자 진술을 볼 때 범행 뒤의 행동만으로 진술 전체를 배척하지 않고, 그 관계에서 벗어난 뒤 진술이 일관되는지,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과 구조가 맞는지를 함께 보는 이유다.
나. 다수 피해자와 양형
피해자가 여럿이고 범행이 수년에 걸쳐 반복됐다면 양형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미 다른 사건으로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라는 사정도 항소심에서 다시 따져질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항소는 판결 선고일부터 7일 안에 제기해야 하므로 피고인 측도 판결 뒤 곧바로 항소장을 냈다. 항소심의 쟁점은 결국 1심이 인정한 '심리적 항거불능'이 피해자마다, 범행마다 증명됐는가로 모일 것이다.
3.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면, 또는 혐의를 받는다면
가. 피해자라면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이유로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 일기, 단체 내부의 교육 자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진술이 지배 관계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혼자 기억을 정리하기 어렵다면 해바라기센터나 성폭력 상담소를 거쳐 진술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수사 과정에서는 신뢰관계인 동석, 진술조력인 등 피해자 보호 제도를 요청할 수 있다. 민사상 손해배상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이라는 시효가 있으니 형사 절차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나. 피의자로 지목됐다면
준강간 사건에서 "폭행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방어가 되지 않는다. 다툼의 중심은 상대방이 당시 어떤 심리 상태였고, 피의자가 그것을 알고 이용했는가다. 첫 조사 전에 관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사실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객관적 자료와 어긋나는 진술을 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진술을 바꾸라고 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불리한 정황이 되고 별도의 범죄가 될 수 있다.
4. 맺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은 거절할 수 있는 힘에서 출발한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말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버린 사람에게 "왜 거절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은 그 힘이 이미 빼앗겼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질문이다. 대법원이 관계 전체의 맥락을 보라고 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다만 그 판단은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증거로 하나하나 증명돼야 한다. 항소심이 그 두 가지를 어떻게 함께 붙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6.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다른 칼럼
'나랑 잘래요'와 '잘해요' 사이, 전화 한 통이 성범죄가 되는 조건
실습 여경 성희롱 논란으로 본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의 성립 요건과 대법원 판단 기준, 공공기관 성희롱과 징계, 피해자와 피의자의 대응.
칼럼 읽기 →변호사 칼럼 · 2026. 10. 22.이별 통보 뒤 결박과 성폭력, 연인·부부 사이에도 강간죄는 성립한다
교제폭력 끝에 벌어진 강력사건으로 본 연인·배우자 간 강간죄, 강요된 혼인신고, 접근금지와 잠정조치, 피해자 보호의 빈틈.
칼럼 읽기 →변호사 칼럼 · 2026. 10. 21.쇼핑몰 식당가의 수상한 휴대전화, 다리를 찍어도 불법촬영이 되나
복합쇼핑몰 식당가 불법촬영 입건 사건으로 본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요건과 미수 처벌, 임의제출 휴대전화 증거의 범위, 피해자와 피의자가 할 일.
칼럼 읽기 →글 신동우 대표변호사 · 2026. 10. 26.